[벤처하는 의사들] “의사 경험에 의존하던 심장 영상 판독, AI로 정확도 높인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3-07-23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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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혈관질환은 전 세계 사망 원인 1위이자 국내에서도 암에 이어 사망 원인 2위인 치명적인 질환으로 꼽힌다. 최근 고령화로 심장질환 환자는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0년 주요 심장질환 환자는 162만4062명으로 2016년 138만9346명보다 17% 늘었다. 특히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막혀 심장이 손상되는 심근경색증 환자는 30% 증가했다.
심장질환 환자 수와 함께 검사 수요도 늘어나고 있지만, 검사 기술은 여전히 기존 방법에서 크게 진전된 게 없다. 심장의 모양을 보려면 자기공명영상(MRI)이나 컴퓨터단층촬영(CT)이 필수적인데, 비용과 시간, 인력 부담이 크다는 한계가 있다. 경험이나 지식이 풍부한 심장 판독 전문의가 하는 게 가장 좋지만, 부족한 인력으로 폭증하는 검사를 모두 소화하기엔 역부족이다. 눈으로 영상을 판독해야 하는 만큼 의사마다 진단 수준이 다른 것도 문제다.
최병욱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인공지능(AI)에서 해답을 찾았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빠르고 정확한 판독이 가능하도록 자동으로 영상을 분석하고 진단하는 기술 개발에 나섰다. 최 교수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인 김판기 연세대 의과대학 방사선의과학연구소 연구원을 만나 2019년 함께 팬토믹스를 설립했다.
지난 20일 서울 강서구 마곡의 팬토믹스 사옥에서 만난 최 교수는 “의료 인프라 대부분이 디지털로 전환되고 있는데, 심장질환 영상 판독은 여전히 의사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해야 했다”며 “아직 시장에서 심장질환을 자동 분석하고 진단까지 하는 시스템이 상용화되지 않아, 우리가 해야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팬토믹스 설립과 동시에 두 교수는 AI 소프트웨어 개발에 돌입했다. 그리고 2년 만인 2021년 아시아 최초로 심장질환 자동 분석 소프트웨어인 ‘마이오믹스(Myomics)’를 개발했다. 이 소프트웨어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2등급 의료기기 품목허가에 이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시판전허가(510k)를 획득했다.
마이오믹스는 영상 촬영만으로 심장 기능 변화에 대한 바이오마커(생체지표자)를 AI로 자동 분석해 알려주는 소프트웨어다. 심장 MRI 영상을 찍으면 AI가 수천 장에 달하는 이미지를 인식하고 자동 분석하는 방식이다. 전문가가 30분 이상 걸리던 판독 시간도 단 5분으로 대폭 줄였다. 마이오믹스는 현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고대구로병원 등 상급종합병원 15곳에서 사용하고 있다.
510K 승인으로 미국 판매가 가능했지만, 팬토믹스는 곧바로 진출하기보다 기술 고도화를 택했다. 좀 더 확실하게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다. 현재 자동 분석에 진단까지 가능한 제품을 개발해 식약처 3등급 인증 허가를 준비 중이다.
최 교수는 “심장은 특히 MRI를 자동화하는 데 측정하고 평가하는 지표가 많아 기술적으로 복잡하다”며 “현재 영상을 자동 분석하는 기능은 미국 시장에 상용화됐지만, 진단 기능까지 제공하는 제품은 없다”고 말했다.
마이오믹스의 MRI 분석·진단 정확도 실험 결과도 긍정적이다. 일반 전공의가 눈으로 MRI를 측정한 것과 마이오믹스를 비교 실험한 결과 마이오믹스의 진단 정확도는 90.9%, 분석 성공률은 99.3% 기록했다. 현재 마이오믹스는 태국과 대만 시장에서도 인허가 절차가 진행 중이다.
최 교수는 연세대 의학과를 졸업해 같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대한의료인공지능학회장을 지냈고, 현재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의 의료영상데이터사이언스센터(CCIDS)의 소장과 아시아 심혈관영상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창업을 결심한 계기가 무엇인가.
“혈관 조영술 같은 비침습적 심장 영상이 전문 분야다. 심장질환을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방법이지만, ‘카테타(도관)’라는 2㎜의 가는 튜브를 환자의 심장에 꽂는 시술로 환자가 하루 이상 입원해야 하는 고통과 불편, 비용이 따른다. 혈관 조영술이 필요한 환자를 분류하는 데 CT 판독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만 육안으로 판독하다 보니 정확도가 떨어질 때가 있다. 혈관 조영술을 했다가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 경우가 무려 절반에 달한다. 판독의 정확도를 높여서 불필요한 시술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의료인으로서 AI 기술 개발을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최근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문제로 논란이 많은데, 사실 인력이 증원된다고 해도 인턴, 레지던트, 펠로우십을 거쳐 심장 영상 전문가로 현장에 투입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의료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은 빠르게 변하는데, 영상 판독 전문 인력을 늘리는 게 근본적인 해결법은 아니라고 봤다. 자동으로 분석해 진단하는 객관적인 툴이 필요했다. 현재 팬토믹스의 모든 사이언스는 김판기 공동대표 겸 CTO(최고기술경영자)가 담당하고 있다. 김 대표가 아니었다면 창업을 결심하지 못했을 거다.”
–FDA 승인에도 바로 미국 시장에 진출하지 않은 이유는 뭔가.
“의료AI 분야의 선배 기업인 루닛(35,500원 ▼ 1,850 -4.95%)과 뷰노(31,850원 ▼ 1,650 -4.93%)가 지금은 굉장한 성과를 내고 있지만, 당시에만 해도 시장에서는 경쟁력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보험 급여 문제가 컸다. 의료 시장에서 보험 급여가 안 된다는 건 구입할 사람이 없다는 의미다. 당시 마이오믹스는 자동 분석하는 기술로 FDA 승인을 받았는데, 새로운 의료기술로 보기엔 부족했다. 여러 경로로 알아보니 아직 진단까지 자동화한 기업은 없더라. 그 시장을 노려야겠다고 판단했다. 기술을 고도화한 이후에는 본격적인 미국 진출을 위해 다국적 의료 장비 회사와 협력해 유통망을 확보할 계획이다.”
–현재 제품 고도화는 어느 정도 진행됐나.
“관상동맥이 막히는 심부전증과 심장근육이 비대해지면서 생기는 비후성 심근병증을 자동 진단하는 기술을 개발해 식약처 3등급 허가를 진행 중이다. 내부적으로 검증은 완료했고, 세브란스 병원에서 200~300명 규모로 임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식약처 인증이 완료되면, 곧바로 FDA 허가를 추진할 거다.”
–또 어떤 제품을 개발 중인가.
“돌연사가 많은 급성 심근경색을 선별 진단하는 ‘안지오믹스(Angiomics)’를 개발하고 있다. 이건 목표가 딱 하나다. 골든타임이 3시간에 불과하다. 어떤 질환보다 빠른 진단이 필요하다. 심근경색의 원인인 관상동맥 협착도를 평가해 수술이 필요한 응급환자를 선별하는 원리다. 이미 기술은 구현됐는데, 전문의가 하는 것보다 높은 정확도를 입증한다면 바로 사용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심장질환 중에서도 가장 사망 위험이 높고 치명적인 질환인 만큼 신의료기술로 인정받을 가능성도 높다. 보험 급여도 수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심장질환 외에 적응증을 확대할 계획이 있나.
“현재 MRI를 통해 간 섬유화와 비알코올성지방간(NAFLD)의 바이오마커를 AI로 자동 분석·진단하는 제품도 개발 중이다. 지방량, 섬유화, 간경화, 간기능을 모두 평가해 간세포암종, 간경화 등 간 질환의 진단이 가능하다. 몸 속 근육과 지방을 바이오마커로 분석해 근감소증을 진단하는 제품도 개발하고 있다. 대사, 내분비, 신경 등 다양한 질병을 진단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들 제품은 연내 개발을 마치고 출시하는 게 목표다. ”
조선비즈 염현아 기자